블로그

displaying 16 - 20 blog_post in total 84

데이터 독점 관련 경쟁법 이슈 연구

2023-01-31 16:22:47 0 comments


데이터 독점 관련 경쟁법 이슈 연구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홍대식


이 글은 한국공정거래조정원 『2020년 LEG 연구보고서 』 (2022. 12. 30.)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원문 보러 가기)




데이터는 오프라인 경제 시대에도 상품의 생산 또는 서비스의 제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데이터는 사업자가 어떤 상품 또는 서비스를 생산 또는 제공하여 어떤 가격 기타 거래조건으로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제공할 것인지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조하기 위하여 데이터를 얻고 이를 내부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가격 기타 거래조건 결정에 민감한 경쟁자의 데이터를 교환하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하는 것은 경쟁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데이터가 개인정보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면 그 데이터의 수집, 이용, 3자 제공 등의 처리가 개인정보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는데, 이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경쟁법적 이슈는 아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경제에서의 데이터와 관련된 사업자의 활동을 데이터 경제(data economy) 또는 데이터 주도 경제(data-driven economy)와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오프라인 경제에서는 데이터가 사업자의 의사결정 과정에 도움을 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자체가 독자적인 경제활동으로 인식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데이터 경제 또는 데이터 주도 경제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널리 사용된 것은 온라인서비스의 확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온라인 서비스에서는 데이터가 단순히 의사결정 과정의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의 중요한 투입요소(input)가 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온라인 세계에서는 데이터 수집, 가공, 분석 등 처리하는 과정이 그 자체로 경제활동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데이터를 투입요소로 하는 다양한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데이터 경제와 데이터 주도 경제라는 용어는 서로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데이터 처리 과정이 경제활동이 되는 경우를 데이터 경제로, 이런 데이터를 투입요소로 하는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데이터 주도 경제로 볼 수 있다. 데이터 경제 또는 데이터 주도 경제가 온라인 서비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주로 디지털 데이터이다. 디지털 데이터는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를 말한다.

데이터 경제와 관련된 데이터를 단순한 데이터와 구별하여 빅데이터(big data)라고 부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논의도 많이 발전하였다. 빅데이터는 표현 그대로 대용량의 데이터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단순히 용량이 많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종전에 데이터베이스, 전자화된 파일 등의 형태로 이용되었던 정형(structured) 데이터뿐만 아니라 반정형(semi-structured) 데이터와 비정형(unstructured) 데이터도 포함되고, 이런 다양한 데이터가 분석 대상이 되어 가치 창출의 원천이 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빅데이터는 과거 시스템으로는 처리할 수 없었던 다양한 형태의 대용량의 데이터세트(dataset)와 그로부터 가치를 추출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기술을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이런 의미에서의 빅데이터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기업결합심사기준'에서 정의하는 정보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 또한 빅데이터 기술의 발전은 지능정보서비스를 생산하고 이를 제공 또는 거래하는 시장을 창출하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시장의 창출을 전제로 하는 경쟁법 분야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데이터 경제 또는 데이터 경제 시대에서의 경쟁법적 관점에서의 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제기된다. 첫째, 데이터 경제의 출현과 그 활성화를 위해서는 온라인 서비스의 경쟁 과정에서의 데이터의 중요성이 강조되므로,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한 법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경쟁법의 역할이 요구된다. 둘째,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한 법제가 어느 정도 정비된 것을 전제로 할 때,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의 수집과 상업적 이용의 단계에서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과 그로 인한 소비자 이익 저해 우려에 대처하기 위한 경쟁법의 역할이 검토될 수 있다. 셋째, 온라인 서비스의 경쟁 과정에서의 데이터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데이터 경쟁우위를 갖고 있는 사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업자 간에 데이터 접근성 측면에서 경쟁자가 필적할 수 없는 경쟁 기반의 격차가 형성되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한 경쟁제한행위 발생 가능성은 없는지 경쟁법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첫째,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의 조화를 위한 법적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경쟁법의 역할은 경쟁법의 집행보다는 경쟁주창(competition advocacy)과 관련된 역할이다. 너무 엄격한 개인정보보호법제가 시행될 경우 빅데이터의 수집과 분석의 가능성이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하여 데이터 수집, 활용을 통한 사업자들 간의 경쟁 과정이 저해될 수 있다. 유럽연합(EU) 2016 5월 「일반개인정보보호법(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을 제정하고 이 법은 2018 5월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이 법의 제정 과정에서 데이터 경제에서의 국제적 경쟁의 왜곡을 회피하고 경쟁적인 평평한 운동장(level playing field)을 조성할 필요성이 회원국 경쟁당국에서 제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존의 개인정보보호법제가 데이터 주도의 양면시장형 사업모델에 잘 맞지 않고 데이터 경제 시대에 경쟁제한적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실제로 2020 2월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데이터 경제 3법의 개정 작업 과정에서 경쟁당국인 공정위나 경쟁법학계가 경쟁법적 관점에서 어떤 기여를 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둘째,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의 수집과 상업적 이용의 단계에서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정보 비대칭과 그로 인한 소비자 이익 저해 우려에 대처하기 위한 경쟁법의 역할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사업자가 개인정보처리자로서 정보주체인 개인으로부터 개인정보를 수집,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때 적용되는 사전동의 규칙과 사후통제 규칙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는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이를 통하여 소비자로서의 정보주체의 이익도 보호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은 데이터 거래와 이를 통한 시장의 형성을 전제로 한 법은 아니므로, 개인정보보호법만으로는 개인정보가 포함된 데이터의 상업적 이용에 따른 문제에 충분히 대처하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그에 따라 개인정보보호의 문제는 비단 개인정보보호법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소비자 보호의 문제로, 더 나아가 경쟁 보호의 문제로 진화되었다.

특히 2013 6월 유럽 데이터 보호 감독기관(European Data Protection Supervisor, 'EDPS')에서 주최한 워크숍은 빅데이터 문제를 경쟁법적 관심사로 인식하려는 시도가 국제적으로 공식화되는 계기가 되었다.EDPS 2014 3월 워크숍에서의 논의를 정리하여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이 보고서는 2014 2 Facebook Whatsapp 190억 달러에 인수하고 미국과 유럽의 경쟁당국이 이 기업결합 사건에 대한 심사를 하는 도중에 발표되어 미국과 유럽의 경쟁법 학자 및 실무자들 사이에 이 보고서에서 제시된 의견과 관련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7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에서 Google/DoubleClick 기업결합 사건의 결정과 이 사건에서의 Harbour 위원의 반대의견을 계기로 비가격 경쟁요소로서의 데이터의 중요성에 관한 유사한 논쟁이 진행되어왔다.

독일 연방카르텔청(Bundeskartellamt) 2019 2월 페이스북(Facebook)의 개인정보 수집과 이용에 관한 개인정보처리방침과 이용약관의 운영 방식을 문제삼아 이에 대하여 독일 경쟁법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규정을 적용하여 규제한 사건은 데이터의 수집·이용 단계에서의 경쟁법 적용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사건에서 독일 연방카르텔청은 문제되는 행위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한다는 성격 자체를 착취남용과 연결한 데 반하여, 연방카르텔청의 결정에 대한 법원의 집행정지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경쟁법 고유의 기준으로서 소비자 선택 기준을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규제법')에 의하여 공정위가 약관에 대한 추상적 통제 권한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정보보호 수준이 문제된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의 약관조항이 약관규제법에 의한 제재를 받은 사례가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의 공정위의 판단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문제되는 약관조항을 사용한 행위가 2020 2월 개정 전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에 정한 원칙에 위배되거나 그 법률들에 정한 사업자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행위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약관규제법상 불공정성 판단에서 매우 비중 있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데이터 접근성 측면에서의 경쟁 기반의 격차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경쟁제한행위 발생 가능성에 대처하기 위한 경쟁법의 역할이다. 이는 특히 이용자 데이터의 확보가 데이터 경제 시대에 경쟁우위의 원천이 된다는 인식 하에 이용자 데이터 확보 경쟁에서 경쟁우위를 갖는 주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이 데이터 기반 시장력(market power) 내지는 시장지배력(market-dominant power)을 갖고 그러한 힘을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하여 행사할 우려에서 비롯되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 시장지배력의 형성과 그 남용 가능성을 설명하는 도구로 여러 새로운 경쟁침해이론(theories of competitive harm)이 등장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 사례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주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기업결합 사건에서 이런 논쟁은 실제 사건 분석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최근에는 데이터 기반 시장지배력 행사 가능성을 차단하고 데이터 기반 경쟁의 압력을 정책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데이터 접근(data acces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데이터 경제 시대에서의 사업자의 경쟁력은 관련 데이터에 대한 적시의 접근과 데이터를 새롭고 혁신적인 애플리케이션과 상품 개발에 이용하는 능력에 점차로 더 의존하게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적인 제약 및 데이터 기반 시장지배력을 갖는 주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경쟁제한적 행태로 인하여 경쟁사업자나 새로운 진입자의 데이터 접근이 어려워질 경우 경쟁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위와 같은 3가지 차원의 데이터 관련 경쟁법 이슈 가운데 세번째 이슈인 데이터 접근 이슈를 주로 다룬다. 데이터 접근이 경쟁법적 이슈가 된다는 것은 데이터가 서비스 제공 또는 상품의 생산에서 중요한 투입요소가 되고 대규모의 데이터세트로부터 정보를 추론하여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한 경쟁변수가 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의 데이터세트에 대한 접근 기회가 열려 있지 않고 데이터 거래와 관련된 경쟁제한적 행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데이터 접근 이슈는 데이터 수집, 축적 단계에서도 문제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수집, 축적된 데이터의 이용, 특히 제3자 제공 또는 거래 단계에서 데이터 경쟁우위를 갖지 못한 사업자의 데이터 접근 제한의 문제를 다룬다. 데이터 접근이 경쟁법 이슈가 되는 사건의 유형 중에는 기업결합 사건 유형이 있고 실제 미국과 EU의 기업결합 사건 중에는 데이터 접근 제한 우려가 쟁점이 된 사례가 몇몇 있으나, 이 연구에서는 기업결합 사건을 제외하고 단독행위 사건 유형, 그 중에서도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 유형에 초점을 맞춘다.

이 연구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먼저 논의를 위한 정책적 배경 설명을 위해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쟁점을 점검한다(2). 다음으로 데이터 접근 거래와 관련된 잠재적인 데이터 시장실패의 유형에 대한 검토를 기초로 하여 데이터 독점 현상에 대한 법경제학적 이해를 시도한다(3). 이어서 이런 법경제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데이터의 유형에 따른 데이터 접근 관련 법적 틀 마련을 위한 이론적 토대를 검토하고 그 법적 틀에서의 경쟁법의 지위를 논의한다(4). 또한 데이터 접근 관련 경쟁법 이슈에 대한 대응방안으로서 경쟁법 집행 방안을 간략히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서 경쟁법 원칙을 고려한 정책 대안을 모색한 후(5), 결론을 맺는다(6).      


Read More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규제와 자율규제에 대한 시사점

2022-10-22 22:10:07 0 comments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규제와 자율규제에 대한 시사점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대식


이 글은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정보보호 법제연구』 2022년 2호(2022. 10.)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원문보러가기)


.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규제


1. 공정거래법상 독과점규제의 기초


 우리나라에서 경쟁법의 성격을 갖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독과점규제는 시장에서의 힘과 시장의 경쟁 상황을 분석하기 위한 규제를 말하는 것으로, 구조규제와 행위규제의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구조규제는 힘을 보유한 사업자의 특정 행위를 매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에 대한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제4(독과점적 시장구조의 개선)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게 현황 조사, 분석 및 정책 추진의 구조규제 방식의 독과점규제 권한을 부여한다. 다음으로 행위규제는 힘을 보유한 사업자의 특정 행위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서 행위에 대한 규제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제5(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금지)는 공정위에게 구체적인 사건 조사, 분석 및 제재, 시정의 행위규제 방식의 독과점규제 권한을 부여한다.

 공정거래법상 경쟁법으로서의 독과점규제 규범은 시장의 변화와 기술적 발전에 대처하기에 충분할 만큼 유연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평가는 경쟁법이 전제로 하는 시장의 모습과 시장의 규칙으로서 경쟁법이 갖는 역할에서 도출된다. 경쟁법이 전제로 하는 시장의 모습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다수의 사업자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경쟁하는 시장이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가격이 시장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가격의 균형추 역할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은 시장에서의 경쟁의 규칙이다. 시장의 규칙으로서 경쟁법의 역할은 경쟁의 규칙을 위반하는 반칙행위에 대한 보이는 손으로서 정부의 개입이다. 정부 개입의 법적 수단이 경쟁법 또는 반독점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독과점규제 규범은 관할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미국은 시장에서의 힘에 대한 가장 높은 기준으로 독점력(monopoly power) 기준을 채택한다. 다만 미국은 독점력 보유의 경우만이 아니라 그 보유 시도도 규제 대상으로 한다. 미국은 또한 시장의 경쟁 상황 분석에 관하여 경제학적 접근인 소비자 후생 기준(consumer welfare standard)을 위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유럽연합(EU)은 시장에서의 힘에 대한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으로 시장지배력(dominant power) 기준을 채택한다. 다만 EU는 시장지배력 보유의 경우만을 규제 대상으로 한다. EU에서는 시장의 경쟁 상황 분석에 관한 행태적 접근과 경제학적 접근이 공존한다. 이는 EU의 경우 미국과 달리 행태적 접근에 해당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론과 경쟁보호 기준(protection of competition standard)도 적용하고 있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적 형태는 유럽연합과 유사하지만, 적용 방식은 발전 과정에 있어 미국 방식과 유럽연합 방식이 교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독과점규제의 기초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외의 주요국의 정부 또는 연구기관에서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전문가보고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 보고서에서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주요 특징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중에 EU 특별 자문가보고서(2019)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특징을 규모 수익체증(increasing returns to scale)과 네트워크 효과, 범위의 경제, 그리고 데이터의 역할 3가지로 설명한다. 네트워크 효과는 수요 측면의 규모의 경제로서,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을 설명해주는 원리이다. 범위의 경제는 투입요소인 데이터의 역할과 연결되고 디지털 생태계의 출현과 성장을 설명해주는 원리이다. 데이터의 역할은 특히 소비자 행동에 대한 데이터 축적에 의한 역할로 설명된다. 그 밖에 주요 전문가보고서인 영국 퍼만 보고서(2019)미국 스티글러 보고서(2019)에서 추가적인 특징으로 거론되는 사항으로는 극히 낮은 한계비용, 시장의 글로벌 성격, 자본 원천에 대한 특권적인 접근 등을 들 수 있다.

 위와 같은 문헌에서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주요 특징으로 제시하는 사항이 관련 시장들에 주는 효과는 원칙적으로 중립적이다. 다만 위와 같은 문헌은 공통적으로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주요 특징이 야기하는 새로운 위험으로 쏠림 효과(tipping effect)를 지적하고 있다(쏠림 효과를 지적하고 있는 문헌의 원문은 여기). 쏠림 효과는 시장이 단일한, 초시장지배적인(ultra-dominant) 공급자를 중심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주요 특징이 작용하는 시장들은 쏠림의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쏠림 효과를 갖는 시장을 얻기 위한 경쟁 초기에는 강한 경쟁을 촉진하나, 일단 쏠림 효과가 발생한 후에 경쟁이 약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에 따라 시장에서의 힘이 계속 성장하고 견고하게 지속되며 인접시장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쏠림 효과가 발생한 시장(tipped market)에서 힘을 갖는 사업자는 복잡한 생태계를 구축하여 데이터 수집 및 분석 역량을 증대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보호할 수 있다.

 문헌에 나타나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특징과 그 특징들이 결합하여 나타날 수 있는 예상 효과를 통해 볼 때, 디지털 시장에서의 디지털 플랫폼 이해의 중요성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디지털 시장에서의 경쟁은 전통적인 시장에서의 경쟁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사업자가 수익 증대를 위하여 낮은 가격과 상품 설계(product design) 및 생산 기술에서의 혁신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얻기 위하여 경쟁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장에서는 이런 경쟁이 반드시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다. 디지털 시장에서의 경쟁 변화의 주된 요인은 디지털 플랫폼의 특성에 기인한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출현에 따른 변화는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와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의 경쟁의 모습을 비교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에서의 경쟁의 모습은 규모의 경제를 갖는 주요 공급자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가치사슬에 의한 일방향적인 공급과 수요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혁신의 양상은 점진적(incremental) 혁신과 돌파적(breakthrough) 혁신으로 구분되는 현상유지적(sustaining) 혁신으로 나타나고, 대부분의 경쟁은 시장 내에서의 경쟁(competition in the market)의 성격을 갖는다. 이에 대하여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의 경쟁의 모습은 네트워크 효과를 갖는 플랫폼 양쪽에 있는 고객과 파트너를 포함하는 생태계에서의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여기서의 혁신의 양상은 파괴적(disruptive) 혁신과 시장의 경계를 옮기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두드러진 경쟁은 시장을 얻기 위한 경쟁(competition for the market)의 성격을 보인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창출하는 시장의 출현에 따른 변화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기술, 특히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기술의 특징은 데이터 입력알고리즘에 의한 처리결과 출력이라는 기존의 프로그램 과정을 데이터 및 원하는 결과 입력기계학습알고리즘 출력이라는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전환 과정에서 기계학습의 원천이 되는 유용한 데이터의 확보와 자동화된 의사결정 알고리즘의 중요성이 증대된다. 그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이 경쟁 구도와 사업자 간의 역학관계에 대한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로 인한 새로운 이슈는 투입 요소로서의 데이터 확보 및 접근 관련 이슈와 산출물로서의 알고리즘의 시장 이용 관련 이슈이다. 투입 요소로서의 데이터 확보 및 접근 관련 이슈는 인공지능 시대의 경쟁에서의 데이터와 데이터 접근의 중요성이 증대함에 따른 것이다. 산출물로서의 알고리즘의 시장 이용 관련 이슈는 인공지능의 블랙박스로서의 성격과 그로 인한 행위 유형 평가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의 시장의 변화는 경쟁법에도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그 도전은 전통적인 경쟁법의 분석 틀의 유효성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난다. 전통적인 반독점 분석 적용으로 디지털 플랫폼 경제에서 발생하는 경쟁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충분한가 하는 의문이다. 경제학적 연구 성과는 전통적인 반독점 분석의 각 단계, 즉 관련시장 획정 단계부터 시장 진입과 효율성 판단 단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분석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에 따라 플랫폼 경제에서 일어나는 사업에 대한 경쟁법 집행 또는 경쟁정책 수립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위법오판의 오류에 주의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반독점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전통적인 반독점 분석은 과거에도 원래 상정하였던 것과 다른 거래 상황이 새롭게 대두될 때마다 도전을 받아 왔다. 그때마다 그 틀을 확장하거나 수정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왔다. 따라서 플랫폼 경제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도 전통적인 반독점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Read More

새 정부의 공정거래정책에 대한 제언: 온라인 플랫폼 분야를 중심으로

2022-06-27 23:41:21 0 comments


새 정부의 공정거래정책에 대한 제언:

온라인 플랫폼 분야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대식


이 글은 공정경쟁연합회 『경쟁저널』 제211호(2022. 5.)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202253일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였다. 110개의 국정과제는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 사는 국민의 나라를 국정 비전으로 하여, 국익, 실용, 공정, 상식을 국정운영 원칙으로 하는 5대 분야별 국정목표와 그와 연결되는 20개 약속의 세부적인 실행계획을 구성한다. 110개의 국정과제 중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업무와 관련된 항목은 모두 3가지이다. 그것은 29번 과제인 공정한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 활성화, 30번 과제인 공정거래 법집행 개선을 통한 피해구제 강화, 33번 과제인 불공정거래, 기술탈취 근절 및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확산이다(33번 과제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공동). 3가지 과제는 모두 경제 분야 국정목표인 [국정목표2]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와 그와 연결된 [약속06] ‘중소·벤처기업이 경제의 중심에 서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의 세부적인 실행계획에 해당한다.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기조가 공정위 정책에 시사하는 점

 

새 정부의 경제 분야 국정목표의 키워드는 민간 주도(‘민간이 끌고’), 정부 지원(‘정부가 미는’)이다. 역동성과 경제 활력, 혁신 역량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국정 비전에서부터 분명히 한다. 인수위원회의 발표문에서는 이것이 경제의 중심을 기업과 국민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는 문재인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라고 생각되는데, 이견도 있을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201910월 발표한 대정부권고안에서 민간 주도, 정부 조력을 정부가 지향해야 할 3대 기본원칙 중 하나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에 제시된 경제분야 국정목표, 전략과 국정과제에서는 정부가 경제의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통해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고,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대정부권고안이 문재인정부에서 채택되었다는 명시적인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전환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경제의 중심 변화를 천명한 것은 공정위를 포함한 경제부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정위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경쟁정책, 공정거래 및 거래공정화정책, 대기업집단정책, 소비자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경쟁정책과 대기업집단정책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공정거래 및 거래공정화정책은 공정거래법 및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과 같은 거래공정화 4법에, 소비자정책은 소비자관련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공정위의 홈페이지에서는 공정위의 정책을 근거 법률에 따라 경쟁정책(공정거래법), 소비자정책(소비자관련법), 기업거래정책(거래공정화 4)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공정거래법에 근거한 경제력집중억제, 부당내부거래와 불공정거래행위 관련 정책이 본래적 의미의 경쟁정책과 관련성을 갖고 수행되지 않는다면 이런 구분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이 중에 공정거래 및 거래공정화정책과 대기업집단정책이 상대적으로 강조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고, 그 주된 정책수단은 정부가 법령 또는 연성규범(soft law)을 통해 공급한 규칙과 거래 모델을 민간이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이를 민간이 참여하는 자율적 개선 방향이라고 이해하는 것으로 보였으나, 이는 새 정부가 지향하는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기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거래공정화정책의 온라인 플랫폼 분야 확대 추진 전략의 수정 필요성

 

문재인정부의 공정위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20206월 이후 추진된 온라인 플랫폼 불공정 근절 및 디지털 공정경제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 추진, ② 「전자상거래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전소법’) 개정 추진, 플랫폼 분야 단독행위 심사지침제정 추진이라는 3가지 실행계획으로 구성되었고,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 입법예고(20209) 및 국회 제출(20211), 전소법 개정안 입법예고(20213)와 심사지침 행정예고(20221)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공정위의 2022년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도 이 실행계획이 핵심과제인 디지털경제에서의 경쟁촉진 및 소비자권익 증진의 실천과제인 디지털 공정경제의 기본규범 제도화의 세부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비록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이 정책의 계속 추진 여부에 대한 명시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새 정부에서 이 정책이 원래의 모습으로 계속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 정책은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기존의 수직적 가치사슬(value chain)로 연결된 파이프라인 경제에 대응하여 설계, 발전된 거래공정화정책을 비록 완화된 형태이나마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 확대 적용하는 형태로 설계된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디지털 공정경제 정책을 구체화하는 대표적인 법안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에는 공정위 관계자들이 스스로 이 법안의 핵심으로 꼽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에 대한 필수기재사항이 포함된 서면계약서 작성교부의무 규정이 있는데, 역설적으로 이 규정은 법안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이 규정이 사전규제 성격을 갖는다는 비판에 대한 공정위의 공식 입장은 수십차례에 걸쳐 발표한 보도설명 또는 해명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공정위의 공식 입장은 첫째, 서면계약서 작성교부의무 규정은 플랫폼의 특성을 고려하여 전통적인 사전규제 방식과 다르게 설계된 최소한의 장치이고, 둘째, 다른 거래공정화법과 달리 약관동의방식을 통한 계약 체결도 인정할 방침이며, 셋째, 상품노출순서 결정기준은 입점업체 이해관계에 직결되는 중요한 거래조건이라는 점에서 입점업체의 예측가능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하도록 했을 뿐, 알고리즘까지 공개하도록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면 기존에 하도급거래, 가맹사업거래, 대규모유통업거래에 적용했던 사전규제의 틀을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 적용하면서 그 규제의 내용과 강도를 정책적으로 조절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이 정의하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이 참여하는 생태계가 조성되고 그 운영과 질서 유지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사업자의 원칙 및 규칙 확립과 그 실행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이를 감독하기 위한 투명성(transparency)과 책무성(accountability)을 높이는 제도적 방안이 논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정책적 대응이다. 그러나 비록 온라인 플랫폼이 사업 대상으로 하는 분야와 유사한 오프라인 사업을 상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사업 방식에는 네트워크 효과 창출과 유지, 확대를 위한 양면시장의 구조와 사업모델 설계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개방성과 신뢰의 균형을 유지할 유인이 있고 균형을 잡기 위한 방안에는 수많은 다양성과 변수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업 형태나 방식이 비교적 정형화된 사업분야에서 발전된 투명성, 책무성 논리와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제도를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 그대로 이식하고 플랫폼 유형에 관계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경우 그 효과가 비대칭적으로 발생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작용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

공정위의 기존 거래공정화정책은 정부가 해당 사업 형태나 방식에서 필요한 계약사항을 잘 파악하고 규율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정부가 시행령 규정으로 정한 계약사항을 사업자가 서면으로 작성하여 교부할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 이행 여부를 서면실태조사와 같은 제도적 수단을 통하여 감독하고 형식적 위반이 있으면 제재하는 방식으로 실행되어왔다. 이런 방식은 정부가 공급하여 권장하는 표준계약서나 정부가 정한 내용에 따라 자율적인 형태로 체결되는 상생협약과 결합된다. 이와 같은 정책 실행 방식은 정부의 명령·지시적 방식의 규제(command and control regulation)보다는 완화된 것이지만, 정부가 사업자의 행동규범 공급자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자율규제(self-regulation)와는 거리가 멀고 자율준수(self-discipline)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디지털플랫폼 분야에서의 공정거래질서 확립과 관련하여, ‘선 자율규제, 후 상황에 따른 최소규제라는 기조하에 자율규제를 토대로 필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 실행 방식을 채택한 거래공정화정책을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 확대하는 취지의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 추진 전략은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자율준수가 아닌 자율규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공정위가 담당하는 공정거래정책 영역에서도 자율규제의 모델이 이미 존재한다. 공정거래법 제45조 제5, 6항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부당한 고객유인 방지를 위한 자율규약을 제정하여 공정위에 심사를 요청하는 근거를 두고 있고, 가맹사업법 제15조에는 가맹본부 또는 가맹본부 사업자단체가 가맹사업의 공정한 거래질서 유지를 위한 자율규약을 제정하여 공정위에 심사를 요청하는 근거를 두고 있다. 다만 이런 법적 근거에 기반을 둔 자율규제 활동이 활성화되지는 못해 가맹사업 분야의 경우 2002년 법 제정 때부터 법적 근거가 있었음에도 실제로 자율규약 제정 심사요청과 승인이 이루어진 것은 2018년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사례가 최초였다. 더욱이 거래공정화 4법 중 자율규제의 법적 근거를 둔 법률은 가맹사업법이 유일하다. 다른 법률(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대리점법)에는 그 대신 정부가 표준계약서 제정의 방식으로 사업자의 행동규범 공급자의 역할을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의 경우 자율규약 방식이 아니라 표준계약서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가맹사업거래보다도 더 생태계 구성원 간의 협력적인 성격이 강하고 사업 유형도 더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 분야 거래의 특성에 맞지 않는다.

따라서 온라인 플랫폼에 특유한 공정거래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출발점은 민간 중심, 정부 지원의 자율규제 방식이 되어야 한다. 이 방식에서는 법령에 의하여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여 제정하는 자율규약이 중심이 된다. 이 자율규약의 제정에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이용사업자도 참여하되, 이해관계자가 직접 협의해서 할 수도 있고 자율기구를 구성해서 이를 통해서 할 수도 있다. 정부의 역할은 자율규약의 제정 또는 자율기구의 구성을 승인하고 그 이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하며 이행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자율규제의 법적 확실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관련 법률에 근거 규정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위가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안을 마련할 때 참조하였다고 밝힌 유럽연합의 법률도 이와 같은 자율규제 또는 공동규제(co-regulation)의 틀을 규정하면서 그 틀 내에서 실증적인 검토를 통하여 법적인 투명성 의무가 부과되는 범위를 정하는 입법 방식을 취한 점에서 공정위 법안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향후에 기존 법률의 개정이든 새로운 법률의 제정이든 온라인 플랫폼 특유의 규율을 도입할 경우에는 법적인 투명성 의무를 어느 범위에서 부과할 것인지, 즉 의무화된 서면계약서에 포함되는 필수기재사항이 몇 개고 어떤 항목이 되어야 하는지라는 2차적인 쟁점에 앞서 규율의 틀을 자율규약 방식인 자율규제로 할 것인지 표준계약서 방식 또는 상생협약 방식인 자율준수로 할 것인지라는 1차적인 쟁점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자율규제를 선택하면서 그 구체적인 내용을 민간 중심, 정부 지원의 취지에 맞게 설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Read More

규제산업에서의 공동행위의 적용제외에 대한 고찰

2022-05-13 09:28:05 0 comments


규제산업에서의 공동행위의 적용제외에 대한 고찰

-‘공정위의 해운업계 운임 공동행위 사건을 중심으로-


홍대식 교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한국공정거래조정원 『공정한 동행』 창간호(2022. 4. 29.)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원문보러가기)


1. 들어가는 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2022. 1. 18. 12개 국적선사들과 11개 외국적 선사들을 포함한 23개 선사들이 2003. 12.부터 2018. 12.까지 한국-동남아 수출수입 항로에서 총 120차례 해상 운임을 합의하였다고 인정하여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합계 962억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공정위 보도자료에서 설명한 사실관계를 토대로 볼 때, 23개 선사들의 행위는 2020. 12. 29. 법률 제177799호로 개정되기 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19조 제1항 제1에 정한 가격결정 공동행위의 요건에 들어맞는 행위이고, 이런 행위의 위법성을 비교적 쉽게 인정하는 판례의 법리를 적용할 때 부당한 공동행위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심리 과정에서 당사자인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그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해수부’)의 유례없는 반발에 직면하였다.

논란의 근거는 외항화물운송사업자의 운임 등의 협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규정을 둔 해운법29조의 존재이다. 공정위는 23개 선사들이 이 규정에 따른 절차적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정 전 공정거래법 제59에 정한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대하여 해운업계와 해수부는 공정위의 판단이 해운업계의 실정과 해수부의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형식적인 판단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한 23개 선사들은 공정위 의결서가 송부되면 서울고등법원에 불복소송을 제기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에 결정이 내려진 선사들의 한국-동남아 항로에서의 해상운임 합의 외에도 선사들의 한국-중국 항로 및 한국-일본 항로에서의 해상운임 합의에 대한 조사도 진행하고 있어 유사한 논란이 조만간 재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별도로 2021. 7. 22. 위성곤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해운법 개정안에는 해운법 제29조에 따른 선사들의 협약 허용 절차를 개선하면서 이런 협약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규정을 도입하려고 하여 입법적 논란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런 배경하에, 이 글에서는 먼저 이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 논란의 근거가 되는 해운법 제29조의 성격과 공정거래법 적용제외의 요건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해운업과 같은 이른바 규제산업을 규율하는 법령에서 산업정책 등과 같이 경쟁정책과 외형상 충돌되는 정책에 근거하여 공정거래법에 위반될 수 있는 행위를 허용하는 규정을 두는 경우 그에 따라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제외하기 위한 방법, 범위와 한계에 대하여 이론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로 한다.


 

2. 해운법 제29조의 성격과 공정거래법 적용제외의 요건

 

개정 전 공정거래법 제58조는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는 표제 하에 이 법의 규정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은 어떤 행위에 대하여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여 그 행위가 공정거래법상 금지되는 행 요건을 충족하는지를 따지기 전에 그 적용을 제외하는 근거가 되는 일반적 적용제외 규정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 즉 다른 법령과 그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해석론에 맡겨져 있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1997년 대한법무사협회 사건에서 독점규제법 제58조는 이 법의 규정은 사업자단체가 다른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하여는 이를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조항에서 말하는 법률은 당해 사업의 특수성으로 경쟁제한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사업 또는 인가제 등에 의하여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도의 공적규제가 필요한 사업 등에 있어서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여 그 해석 법리를 선언하였고, 그 후 이 법리는 유사한 사건에서 계속 반복 인용되어 확고한 판례 법리로 정립되었다.

이 판례 법리에 의하면, 법에서 말하는 다른 법령은 당해 사업의 특수성으로 경쟁제한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사업 또는 인가제 등에 의하여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도의 공적규제가 필요한 사업 등에 있어서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을 말한다. 따라서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를 이유로 일반적 적용제외 여부를 따질 수 있으려면, 먼저 해당 법령이 당해 사업의 특수성으로 경쟁제한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사업 또는 인가제 등에 의하여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도의 공적규제가 필요한 사업 등을 규율하는 법령이어야 하고, 다음으로 그 법령 규정이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당해 사업의 특수성으로 경쟁제한이 합리적이라고 인정되는 사업에는 이른바 자연독점이라고 불리는 전기가스상하수도철도운송(선박 및 항공운송과 구별) 등이 해당하고, 인가제 등에 의하여 사업자의 독점적 지위가 보장되는 반면 공공성의 관점에서 고도의 공적규제가 필요한 사업에는 이른바 규제산업이라고 불리는 은행업, 보험업, 선박 및 항공운송업 등이 해당한다. 변호사, 법무사, 건축사, 의료기사 등 자격면허제를 통한 진입규제를 두고 있는 전문직도 유형의 사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판례는 법무사를 규율하는 법무사법, 의료기사를 규율하는 의료기사에 관한 법률, 정부투자기관을 규율하는 구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이동통신사업을 규율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손해보험사업을 규율하는 보험업법, 항공운송을 규율하는 구 항공법등의 경우 적어도 또는 유형의 사업을 규율하는 법률임을 전제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법령이 또는 유형의 사업을 규율한다고 하더라도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 규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사업자의 행위 근거가 되는 규정이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대법원의 판단 대상이 되었던 법령 규정 중에 이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된 규정은 국제항공운송사업자의 운임협정에 관한 구 항공법 제117조 및 국내 및 국제항공운송사업자의 운수협정제휴협정에 관한 구 항공법 제121조가 유일하다.

또한 그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는 명령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를 말한다. 이는 그 행위가 법령이 추구하는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행해지는 행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공사들의 화물운송료 공동행위 사건에서 26개 항공화물운송사업자들은 유류할증료를 도입 및 변경하기로 한 합의가 구 항공법 제117조 및 제121조에 따른 행위라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러한 합의는 구 항공법과 항공협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자유경쟁의 예외를 구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법률 또는 그 법률에 의한 명령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사건에서 해당 노선의 지정항공사들은 유류할증료의 도입에 관해서는 구 항공법 제117조에 따라 건설교통부장관으로부터 인가를 받았으므로, 법령에 따른 행위의 절차적 요건은 충족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구 항공법 제117조 제1항과 항공협정은 운임에 대한 가격경쟁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가받은 운임을 기준으로 그 정도가 과도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가격경쟁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 사건 합의는 단순히 전체 운임 중 유류비용 부분을 별도의 항목으로 책정하여 항공화물운임의 체계만을 변경한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종래 기본운임의 일부에 포함되어 상시적인 할인의 대상이 된 유류비용 부분에 대한 할인을 제한하는 행위이므로 구 항공법과 항공협정이 허용하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보았다. 이는 항공사들의 행위가 법령이 정하는 내용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였거나 법령의 취지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23개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 사건에서 적용제외의 근거로 주장된 해운법 제29조도 구 항공법 제117조와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으므로, 그 요건을 충족하는 공동행위는 외형상 법령에 따른 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외형상 법령에 따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법령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로 인정되어야 한다. 그 판단을 위해서는 법령의 해석을 통해 법령의 요건과 허용 범위를 따져봐야 한다. 해운법 제29조는 외항화물운송사업자 간의 운임ㆍ선박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다만 운임 협약은 정기 사업자에 한한다), 이 규정에 따른 행위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적 요건과 내용적 요건을 두고 있다. 절차적 요건은 첫째, 협약을 하거나 그 내용을 변경할 때 해수부장관에게 신고할 것과 둘째, 운임과 부대비용 등 운송조건에 관하여 화주단체와 충분한 정보를 교환하고 협의할 것이다. 내용적 요건은 첫째, 협약에 참가하거나 탈퇴하는 것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이 아닐 것과 둘째, 협약의 내용이 부당하게 운임이나 요금을 인상하거나 운항 횟수를 줄여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아닐 것이다.

공정위는 보도자료에서 23개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는 해운법 제29조가 적용되기 위한 절차적 요건인 해수부장관에 대한 신고 및 화주단체와의 협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 사건 공동행위의 경쟁제한성에 대해서도 상세한 판단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공정위가 운임협약이 해운법 제29조의 내용적 요건을 충족하였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단순히 절차적 요건의 흠결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무부처인 해수부에서 운임협약이 절차적 요건을 준수한 것이라고 주장할 경우 절차적 요건 준수 여부의 판단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주무부처의 판단을 경쟁당국인 공정위에서 심사할 수 있는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쟁점이다.

 

3. 규제산업을 규율하는 법령에 따른 공정거래법 적용제외의 방법, 범위와 한계

 

해운법 제29조 적용의 문제는 경쟁당국의 전문적 판단 영역인 경쟁제한성이 문제될 수 있는 공동행위를 규제산업을 규율하는 법령에 따라 산업당국 또는 규제기관이 심사하면서 경쟁당국의 의견을 듣거나 협의하는 절차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해운법 제29조가 외항 정기화물운송사업자들의 운임협약을 일정한 절차에 따라 명시적으로 허용함으로써 경쟁제한의 폐해를 일정 부분 수인하는 대신 해운산업의 발전이라는 산업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른바 자기완결적 적용제외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 규정이 경쟁정책과 특정 산업에서의 산업정책 간의 상충(trade-off)을 조정하기 위한 취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적어도 경쟁당국이 경쟁제한의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거나 산업당국과 협의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해운법 제29조 제5항은 해수부장관이 신고된 협약의 내용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에 해당하여 필요한 조치를 명하는 경우 그 내용을 공정위에 통보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으나, 이런 절차만으로는 공정위의 적극적인 경쟁주창(competition advocacy) 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

경쟁주창은 경쟁법 집행이 적절하지 않은 영역에서 경쟁당국이 경제적 활동에 대한 경쟁적 환경을 촉진하기 위하여 행하는 행위들을 말하는데, 경쟁법 집행과 경쟁주창은 상호 독립적이거나 배타적인 활동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시켜주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공정위가 경쟁주창 기능을 수행하는 법적, 제도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정거래법 제4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독과점적 시장구조 개선시책 수립시행의무 조항이다. 둘째는, 공정거래법 제120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경쟁제한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개정에 관하여 관계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는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셋째는, 행정규제기본법에 근거한 규제영향분석(Regulatory Impact Analysis)의 일환인 경쟁영향평가(competition impact assessment) 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주창 기능에서 산업당국 또는 규제기관의 연성법(soft law) 수단에 의한 경쟁제한적 규제나 공정거래법의 적용을 제외하는 근거가 되는 법령의 적용에 대한 공정위의 관여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

23개 선사들의 운임 공동행위 사건에서는 이 공동행위가 해운법 제29조에 정한 절차적 요건을 갖추었는지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설령 절차적 요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그 공동행위가 법령에 따른 정당한행위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다. 구 항공법 제117조와 항공협정의 취지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규제산업에 속하는 선박 및 항공운송에서의 운임협정에 관한 규정은 운임에 대한 가격경쟁 자체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가받거나 신고된 운임을 기준으로 그 정도가 과도하지 아니한 범위 내에서 가격경쟁을 예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임협정의 대상이 되는 운임이 법령이 허용한 범위를 벗어난 것인지를 경쟁제한성의 정도와의 비교형량을 통하여 심사하기 위해서는 산업당국 또는 규제기관이 경쟁당국의 전문적 의견을 수렴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거래법 적용제외의 근거가 되는 규정을 두고 있는 법령 중 이러한 의견수렴 또는 협의 절차를 규정한 입법례로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10조에 정한 유통조절명령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농축산부’)장관 또는 해수부장관은 부패하거나 변질되기 쉬운 일정한 농수산물에 대하여 현저한 수급 불안정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고 일정한 생산자등 또는 생산자단체가 요청할 때에는 일정 기간 동안 일정 지역의 해당 농수산물의 생산자등에게 생산조정 또는 출하조절을 하도록 하는 유통조절명령을 할 수 있는데, 이 명령을 내릴 경우 반드시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농축산부는 2009. 10. 제주도 내 농가와 유통상인 등이 참여하는 감귤유통조절추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내부 심의위원회의 의결과 공정위와의 협의를 거쳐 노지감귤 유통조절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공정거래법 적용제외의 근거가 되는 법령에 따른 행위를 산업당국 또는 규제기관이 허용하는 절차에 공정위가 경쟁당국으로서 경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협의하는 절차를 명시적으로 둘 경우, 관련 법령에 따른 산업정책 또는 규제 목적과 공정거래법에 따른 경쟁정책 또는 경쟁촉진 목적 사이의 가치 충돌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후적으로도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인지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분야를 규율하는 법령의 적용을 받는 규제산업의 시장 참여자들이 그 산업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경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격, 품질, 공급량 기타 거래조건이나 고유의 사업활동 영역에 속하는 사항에 대한 협력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 공정거래법에 저촉될 여지를 사전에 점검하는 절차를 통해 투명하고 법적 확실성 있는 내용으로 그와 같은 협력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

디지털 경제의 발전을 위한 경쟁정책

2022-04-05 09:35:58 0 comments


디지털 경제의 발전을 위한 경쟁정책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법제연구원 『신산업규제법리뷰』 제22-1호(2022. 2. 28.)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원문보러가기)

  디지털 경제의 중심이 되는 디지털 플랫폼의 영향력 증대와 알고리즘 담합과 같은 경쟁의 쟁점은 기존 경쟁정책 논리로 해결하기 어려운 특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접근방법이 요구된다. 디지털 경제에 적합한 경쟁정책을 새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수요자-공급자를 연결하고 규율하는 구조의 디지털 플랫폼 시장에 특화된 선제적 이론 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하에, 이 글에서는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경제에서 혁신을 유도하고 소비자 후생을 증대하는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경쟁정책 방향 모색에 도움이 되는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경쟁정책은 경쟁법 집행에 의한 경쟁당국의 회복적 경쟁정책과 전문분야 규제법에 규정된 정책수단에 의한 규제당국의 형성적 경쟁정책을 포괄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경쟁법은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 또는 그 전 단계에서의 사업재편으로부터 시장에서의 경쟁을 보호하는 법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시장에서 사업자들 간에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면 그 결과로 소비자의 후생이 증대된다는 전제하에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시장에서의 사업자의 행위를 분석하기 위한 전통적인 분석 틀은 여전히 SCP 패러다임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그에 비하여 디지털 경제의 새로운 역동성은 네트워크 효과의 발생과 시장에서의 경합가능성의 증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디지털 경제에서의 분석 틀 확장의 필요성이 요청되는데, 이를 위한 대안 이론은 플랫폼 시장 경제학과 시스템 경제학을 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경쟁 분석의 기초가 되는 관련시장 획정 방법론, 경쟁침해이론을 양면플랫폼 사업의 특성을 반영하여 수정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경쟁 과정의 측면에서 기존의 이론을 디지털 시대에 대두되는 쟁점에 적용하기 위해 변형 또는 수정하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기존의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행위가 야기하는 효과에 대한 증거 기반의 사례별 분석을 행할 필요가 있다.

혁신적인 규제 접근방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경제의 난해하고 복잡한 사안들에 대한 부처간 상호연결성을 강화하고 새로운 트렌드와 현안에 대하여 빠르게 이해하고 영향력을 광범위하게 행사할 수 있는 유연한 경쟁정책 추진체계 모델 마련에 대한 합리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디지털 플랫폼 관련 현 규제체계의 문제점은 새로운 규제 도입 움직임의 문제, 기존 필수설비/필수요소 관점에서의 규제 당위성 부족, 규제 대상의 모호성 및 포괄적 해석, 행위의 위법성 판단을 위한 기준의 한계, 협력적인 규제 프레임워크 정립의 어려움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경쟁정책 추진체계 개선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플랫폼 경쟁정책 및 규제 대상으로서 수범자의 범주 명확화와 플랫폼의 불공정 경쟁과 혁신적 경쟁 간 경계에서의 프레임워크 전환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제안한 디지털 시장 경쟁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방안은 다음과 같은 4가지 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 1단계로 규제 대상자(수범자)의 범주가 명확히 정의되어야 한다. 2단계로 규제 대상자가 지정되어야 한다. 3단계로 규제대상자 지정 여부 및 규제 목적에 따른 시장지배력 또는 영향력 판단기준이 현실화 및 세분화되어야 한다. 4단계로 규제 프레임워크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 전환은 잠재적 위험이 현저하고 플랫폼에 특유한 불공정행위에 대해 특정 유형 또는 특정 규모의 플랫폼을 타겟팅하여 선별적으로 제도를 추진하는 단계별 맞춤형 규제를 도입하고, 규제 프레임워크의 큐레이션화를 추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새로운 규제 패러다임을 도입하기 위한 우선적 과제는 디지털 플랫폼의 지속가능한 혁신 도모를 위한 규제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일이다. 디지털 전환 시대 규제 거버넌스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보다 상위의 규범 가치가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규범 가치로서 혁신적 경쟁 도모 및 소비자 후생 증진(이용자 권익 보호)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