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책임 강화 동향: 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작성자 관리자   |   2023-02-18 17:29:41


사외이사 책임 강화 동향: 최근 사례를 중심으로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홍대식



이 글은 삼일PwC 거버넌스센터 『거버넌스 포커스 Vol.20』 (2023. 2.)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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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규모 상장회사 사외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최근 판례 동향

 

. 이사의 감시의무의 구체화로서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및 운영의무

 

  주식회사의 이사는 이사의 선관주의의무의 하나로서 상호간에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시할 의무, 즉 감시의무가 인정된다. 상법에서 이사의 감시의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으나, 이를 인정하는 학계의 통설과 판례가 확립되어 있다. 판례는 이사의 감시의무에 관하여, 주식회사의 이사는 담당업무는 물론 다른 업무담당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시할 의무가 있으므로 스스로 법령을 준수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업무담당이사들도 법령을 준수하여 업무를 수행하도록 감시·감독하여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설명한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7222368 판결). 감시의무의 주체는 회사의 모든 이사가 된다. 회사의 이사는 사내이사, 사외이사, 그 밖에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이사, 그리고 대표이사로 구분되는데(상법 제317조 제2항 제8, 9), 대표이사나 업무담당이사는 물론 상무에 종사하지 않는 사외이사, 기타 비상무이사와 같은 평이사에게도 감시의무가 인정된다.

  이사의 감시의무의 내용은 회사의 업무집행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조사할 의무와 위법 및 부당한 행위가 될 우려가 있음을 발견한 경우 즉시 시정조치를 강구해야 할 의무로 구성된다. 이사가 감시의무를 위반하였는지 판단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판례는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주식회사의 이사가 대표이사나 업무담당이사의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음에도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하여 감시의무를 위반하여 이를 방치한 때에는 그 업무가 자신의 담당 업무가 아니거나 업무집행을 전혀 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감시의무 위반이 인정되어 회사가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부담한다(대법원 1985. 6. 25. 선고 84다카1954 판결 등 다수). 다만 이러한 기준은 이사가 업무집행 관여 여부와 관계없이 감시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에 초점이 있고, 적어도 합리적인 이사가 다른 업무담당이사의 업무집행에 있어서 조사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상황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점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다.

  일반적인 기준 적용만으로는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는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대규모 회사에서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전문분야를 전담하여 처리하는 경우이다. 2008년 대법원의 대우 분식회계 사건(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668636 판결 등)에서 이런 경우에는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라는 기준만으로는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법적 쟁점이 되었다. 대우기업집단의 계열회사 전반에서 이를 지시한 김우중 회장과 회계업무담당이사의 주도로 분식회계가 발생하였는데, 소송에서 계열회사의 대표이사나 다른 업무담당이사들은 내부적인 대규모 사무분장을 핑계로 분식회계를 의심할 만한 사정을 접하지 못했다는 항변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하여 법원은 감시의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회사의 규모나 조직, 업종, 법령의 규제, 영업상황 및 재무상태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는데,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대규모의 회사에서 공동대표이사와 업무담당이사들이 내부적인 사무분장에 따라 각자의 전문 분야를 전담하여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에 관한 감시의무를 면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런 경우에는 업무집행이 위법하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의 인식 계기가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감시의무가 구체화될 수 있는데, 판례가 제시한 감시의무의 내용은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의무이다.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의무는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과 내부통제시스템, 통칭하여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려할 의무를 말하고, 이런 의무는 대규모 회사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개개 이사들에게 주어진다. 대규모 회사의 이사가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위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하더라도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 다른 이사의 위법하거나 부적절한 업무집행 등 이사들의 주의를 요하는 위험이나 문제점을 알지 못하였다면,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진다. 대우 분식회계 사건에서는 대우 계열회사들이 내부적으로 회계조직을 담당한 임직원들의 회계분식 시도를 방지하기 위하여 그 어떠한 합리적인 정보 및 보고시스템이나 내부통제시스템도 갖추지 못하였고, 분식 과정에 직접 관여하지 아니한 대우의 이사들이 분식회계의 가능성에 대비한 그 어떠한 주의도 기울인 바 없었다는 점, 그에 따라 분식 과정에 직접 관여한 임직원들은 다른 임직원들로부터 그 어떠한 제지나 견제도 받지 아니하였던 점 등이 문제가 되어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한 회사에 대한 배상책임이 인정되었다.

 

 .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의무의 내용, 정도와 범위

 

  대우 분식회계 사건에서 대규모 회사의 경우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및 운영의무 위반이 감시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나, 문제된 사안은 분식회계에 관한 것이었다. 회사의 회계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는 2003년에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에 도입된 내부회계관리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회계 업무와 관련한 내부통제시스템에 관해서는 법에 정한 조직을 갖추고 그 기준과 절차를 준수하는 것으로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으로 문제될 수 있는 리스크를 많이 줄일 수 있다. 그에 비해 회계 업무 외의 업무 영역에서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이 성립할 수 있는 컴플라이언스 리스크(compliance risk)가 어떤 것이고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2021년 대법원의 유니온스틸 사건(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17222368 판결)2022년 대법원의 대우건설 사건(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279347 판결)은 이 쟁점에 대한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사건이다. 두 사건은 회사의 업종은 다르지만(유니온스틸은 철강산업, 대우건설은 건설산업) 두 회사 다 가격담합, 입찰담합과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라는 높은 법적 위험이 있는 위법한 업무집행이 문제되었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부당한 공동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위반한 행위이므로 외감법상 회계정보의 작성 및 공시, 오류 통제를 위한 제도로서 회계분야에 한정되는 내부회계관리제도에서 다루어지는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내부회계관리제도를 구축하였다고 하여 이러한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법원은 내부통제시스템은 비단 회계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회계관리제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사업운영상 준수해야 하는 제반 법규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여 그 준수 여부를 관리하고, 위반사실을 발견한 경우 즉시 신고 또는 보고하여 시정조치를 강구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대규모 회사의 이사의 감시의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내부통제시스템의 내용과 그 형태를 분명히 하였다. 즉 내부통제시스템은 회계관리제도에 국한되지 않고 제반 법규의 체계적 파악 및 준수 여부 관리(위법행위에 대한 사전 방지), 그리고 위법행위 탐지 관련 정보 수집·보고 및 통제(위법행위에 대한 사후 복원) 장치로서 기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회사의 목적이나 규모, 영업의 성격 및 법령의 규제 등에 비추어 높은 법적 위험이 있는 중대한 법률행위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유니온스틸의 경우 영위하는 사업인 철강산업의 특수성에 비추어, 대우건설의 경우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대규모 공사를 수주할 수 있는 대형 건설회사가 한정되어 있는 사정에 비추어 부당한 공동행위의 가능성이 상시 존재하므로 이런 위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합리적인 내부통제시스템을 갖출 필요성이 있다고 보았다.

  법원은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의 정도를 판단할 때 대표이사, 업무담당이사와 사외이사와 같은 평이사에 대하여 다른 판단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와 업무집행이사는 회사의 업무집행을 전혀 담당하지 아니하는 평이사에 비하여 보다 높은 주의의무를 부담한다는 것(대법원 2008. 9. 11. 선고 200731518 판결)이 판례의 입장이다. 대표이사만이 관여된 유니온스틸 사건과 대표이사, 업무담당이사뿐만 아니라 사외이사도 관여된 대우건설 사건에서도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및 운영의무의 정도와 범위에 관하여 그 차이가 나타난다.

  특히 회사 업무의 전반을 총괄하여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시·감독하여야 할 지위에 있는 대표이사가 회사의 목적이나, 규모, 영업의 성격 및 법령의 규제 등에 비추어 높은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임에도 이와 관련된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거나 위와 같은 시스템을 통한 감시·감독의무의 이행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결과 다른 이사 등의 위법한 업무집행을 방지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대표이사로서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대표이사와 관련된 업무담당이사는 업무집행의 일환으로 내부감시시스템을 구축할 기회와 권한이 주어지므로, 법적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내부시스템을 직접 구축하고 작동되도록 하여야 하는 강화된 의무를 부담한다. 법적 위험이 인정되는 회사의 사업분야에서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가격담합이 이루어졌음에도, 가격담합에 직접 관여한 임직원들이 대표이사를 비롯한 다른 임직원들로부터 그 어떠한 제지나 견제도 받지 않았음이 인정될 경우, 이는 그 자체로 회사의 업무 전반에 대한 감시·감독의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대표이사가 가격담합 행위를 의도적으로 외면하였거나 적어도 가격담합의 가능성에 대비한 그 어떠한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하여 회사의 업무집행을 담당하지 않는 사외이사 등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전혀 구축되어 있지 않는데도 내부통제시스템 구축을 촉구하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거나 내부통제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고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방치하는 등의 경우에 감시의무 위반으로 인정될 수 있다. 즉 사외이사의 의무는 내부통제시스템 구축 및 운영을 촉구하여야 하는 의무이다. 사외이사는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해서 인식하거나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고 회사의 내부조직을 통하여 내부통제시스템을 직접 구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대우건설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이 임직원의 입찰담합 시도를 방지, 차단하기 위한 어떠한 보고 또는 조치도 요구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한 내부통제시스템의 구축 또는 운영에 관하여도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사의 감시의무 위반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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