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경쟁법

작성자 관리자   |   2020-01-10 09:19:27


인공지능과 경쟁법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ICT 법경제연구소 소장 홍대식


『인공지능과 법』 박영사, 2019, 190-211면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의 해당부분을 참조 바랍니다.

1절 시장의 규칙으로서의 경쟁법이 인공지능 시장을 만날 때


 우리가 아는 시장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품 또는 용역을 공급하는 다수의 사업자들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하여 경쟁하는 시장이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장에서는 누가 의도하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적인 활동에 따라 거래되는 상품 또는 용역의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찾아간다. 이러한 균형을 찾아주는 중심에 상품 또는 용역의 가격이 있다. 일정한 균형 상태에 있던 시장에서 어떤 사업자가 가격을 올리거나 내리면 그의 경쟁 사업자 또는 소비자가 반응을 하여 균형이 깨졌다가 다시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진다. 가격이 이러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업자들이 가격을 중심으로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을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의 규칙은 다름 아닌 경쟁의 규칙이다.


 그런데 현실적인 시장에서는 경쟁의 규칙을 위반하는 반칙행위가 존재한다. 어떤 사업자는 시장에서의 지위가 매우 높아 굳이 가격을 내리는 방식으로 경쟁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사업자는 소비자에게 경쟁 상태에서 형성되었을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상품 또는 용역을 공급하여 초과이윤을 얻거나 자신의 이런 지위를 위협하는 경쟁사업자를 배제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예컨대, 경쟁사업자가 낮은 가격으로 경쟁하려고 할 경우 일시적으로 훨씬 더 낮은 약탈적인 가격으로 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어렵게 하거나 그 사업자의 유통망을 봉쇄할 수 있다. 또는 시장에 그처럼 강력한 사업자가 없더라도 사업자들끼리 가격을 담합하여 그들 사이의 경쟁을 피할 수도 있다. 경쟁의 규칙을 위반하는 사업자들의 행위는 시장경제에 큰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억제하기 위하여 정부의 역할, 즉 보이는 손(visible hand)의 개입이 허용된다. 정부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법적 수단이 경쟁법(Competition Law) 또는 반독점법(Antitrust Law)이다.

 

 경쟁법은 법의 영역이지만 어느 다른 법에 비하여 경제학과의 학제적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이다. 경쟁법의 적용과 집행을 위해서는 시장의 구조와 경쟁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의 시장 참여자 간의 역학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는 경제학의 용어와 논증 방식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업자가 혼자서 행하는 행위 또는 여러 사업자가 공동으로 행하는 행위가 과연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인지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어떤 시장에서 일어난 것이고 그 행위로 다른 시장 참여자 그리고 시장에서의 경쟁의 구도에 어떤 영향이 일어났는지가 분석되어야 한다. 경제학은 바로 이러한 행위의 영향, 즉 효과에 대한 분석 도구와 방법론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법이 문제해결을 위해 수행하는 부담경감의 기능을 고려할 때 경쟁 침해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마다 경제학적 분석에 의존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쟁법에는 일정한 유형의 행위가 존재하면 경쟁 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는 논리적, 경험적 근거에 의하여 행위 유형에 초점을 맞추어 법 집행 여부를 결정하는 법리가 발전되어 있다. 보다 규범적인 행위 유형 중심의 접근방식과 보다 실증적인 효과 중심의 접근방식의 대립과 조화는 경쟁법 집행 실무에서 중요한 과제이다.


 시장의 규칙을 세우고 발전시키는 경쟁법의 과제는 시장의 변화, 특히 그 시장에서의 경쟁 구도의 변화에 따라 계속해서 도전을 받아왔다. 가장 최근의 도전은 플랫폼 경제의 출현에 따른 변화이다. 플랫폼 경제에서는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에서 볼 수 없었던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갖는 주요 공급자를 중심으로 수직적인 가치사슬에 의하여 일방향적인 공급과 수요가 일어나는 반면에, 플랫폼 경제에서는 네트워크 효과를 갖는 플랫폼 양쪽에 있는 고객과 파트너를 포함하는 생태계에서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에서의 경쟁은 눈에 띄는 기술혁신이 없거나 있더라도 일정한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시장 내에서의 경쟁’(competition in the market)의 모습이다. 이에 대하여 플랫폼 시장에서의 경쟁은 파괴적 기술혁신과 시장의 경계를 옮기는 현상이 빈번히 일어나는 시장을 얻기 위한 경쟁’(competition for the market)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경제와 구별되는 플랫폼의 특징으로 인하여 경쟁법의 법리와 사업자의 행위를 판단하기 위한 접근방식에 대해서도 인식 틀과 방법론에서 전환이 필요한 것이 아닌지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시장의 관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창출하는 시장은 플랫폼 경제에서 제기된 문제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그 중 특히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라고 표현되는 기술이 시장에서 사용되면서 경쟁 구도와 사업자 간의 역학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계학습은 데이터 입력알고리즘에 의한 처리결과 출력이라는 기존의 프로그램 과정을 데이터 및 원하는 결과 입력기계학습알고리즘 출력이라는 과정으로 바꾸고 있다. 그에 따라 기계학습은 그 원천이 되는 유용한 데이터의 확보와 기계학습이 만들어내는 자동화된 의사결정 알고리즘의 영향과 관련된 새로운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장의 규칙으로서의 경쟁법이 인공지능 시장을 만날 때 여전히 종전과 같은 규범으로서의 기능을 하면서 집행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떤 변화가 필요할 것인가, 또한 만일 그렇지 않다면 경쟁법은 새로운 디지털 경제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중략)


3절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이 경쟁법에 미치는 영향


 Ⅲ. 새로운 경쟁침해이론의 가능성 

 

 경쟁법은 사업자의 어떤 행위가 시장에서의 경쟁을 침해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경쟁침해이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기술의 적용으로 인하여 경쟁의 과정과 소비자 선택의 과정에 자동적인 의사결정이 일어나게 됨에 따라 경쟁이 침해되는 모습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그에 따라 경쟁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또한 그 동안에는 시장에서의 경쟁 과정을 주된 침해 대상으로 보았으나,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경쟁 과정에 대한 영향은 명확하지 않아도 소비자 선택이 줄어들거나 혁신이 저해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 선택과 혁신을 침해 대상으로 보는 새로운 경쟁침해이론의 출현이 기대되고 있다.


 경쟁법의 전통적인 접근방법에서는 사전에 정의된 관련시장을 기준으로 하여 그 시장에서의 어느 사업자가 시장을 지배하는 힘이 있는지 그 힘을 제어하는 경쟁상 제약이 무엇이고 어느 정도인지를 측정하고 평가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정의한다. 그러나 디지털 경제에서의 사업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경쟁이 더 이상 의미 없게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경쟁은 시장의 경계를 바꾸고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경쟁 개념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경쟁이 침해되는 모습도 바뀌고 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그래프 형태로 유지되면서 조금씩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수요공급곡선처럼, 정태적인 경쟁 과정을 전제로 하여 이를 침해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하던 경쟁 침해의 개념도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경쟁 침해는 혁신의 배치를 더 어렵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하는 행위로 정의될 수 있다. 시장의 경합가능성이 인정되는 한 경쟁은 움직이고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합가능성을 줄이는 행위가 경쟁 침해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소비자 또는 그 창구가 되는 인터페이스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는 행위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경쟁 침해 행위이다.

 

 새로운 경쟁침해이론은 소비자 선택과 혁신을 침해 대상으로 하여 재구성될 수 있다. 경쟁법의 전통적인 접근방법에서도 소비자 선택과 혁신을 침해하는 행위가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전통적인 경제에서는 가격을 인상하거나 생산량을 제한하는 효과를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과 혁신을 침해하는 효과는 부차적으로 고려해도 충분하다. 그에 비하여 디지털 경제에서는 가격 인상 또는 생산량 감소 효과를 분명히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 선택 또는 혁신 침해 효과가 경쟁침해이론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소비자 선택 또는 혁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소비자 선택의 경우 소비자 선택을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선택 범위가 많아지는 것이 소비자 혜택을 더 크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경우에만 보호되는 것으로 볼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다양성이 증가하면 소비자 선택이 보호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나친 다양성 증대로 복잡성이 높아져 소비자가 선택을 내리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기여가 빛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소비자의 선택을 돕기 위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자 혜택을 증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혁신은 잠재적인 경쟁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혁신에는 동일한 가치 네트워크 내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혁신(이는 점진적 혁신과 돌파적 혁신을 포함한다)과 가치 네트워크 외부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혁신이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적용으로 지속적인 혁신을 더하는 경쟁 기업에게 사업상 피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런 과정이 디지털 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파괴적인 혁신의 일환으로 벌어지는 것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누구도 그 해답을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고, 구체적인 사건에서 내려지는 결정도 결국은 정책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법』 박영사, 2019, 190-211면에 실려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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