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정성 개념에 대한 단상

작성자 관리자   |   2018-02-17 10:37:21

                                                                                               홍대식 교수 (서강대학교, 연구소장) 

 

공정성의 다양한 측면 

 

역사적으로 경쟁법에서 공정성은 그 발전 초기에서부터 위법성 판단기준으로 논의되었다. 독일에서 발전된 개념인 급부경쟁 또는 성과경쟁의 개념, 영미에서 발전된 개념인 장점에 의한 경쟁(competition on the merits)의 개념은 자유로운 경쟁보다는 공정한 경쟁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유럽연합(EU) 기능조약 서문에 등장하는 왜곡되지 않은 경쟁(undistorted competition)이라는 개념도 자유로운 경쟁과 연결되는 유효한 경쟁(effective competition)의 개념과 대비할 때 공정한 경쟁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그러다가 경쟁법이 시대를 거쳐 발전하면서 경제철학과 경제이론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되면서 경쟁의 공정성 개념은 후퇴하고, 경쟁의 자유와 이에 대한 제한을 측정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주어지게 되었다. 급기야는 경쟁법 또는 반독점법의 유일한 목적이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시카고 학파의 영향력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경쟁법 학자들은 효율성이 유일한 목적이라는 견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이를 궁극적 목적으로 인식하거나 적어도 이를 일정한 유형의 행위와 관련된 편익 또는 위험을 사전적으로 식별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도구적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EU와 미국에서도 공정성이 경쟁법과 경쟁정책 영역에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EU 집행위원회의 경쟁위원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책임자 연설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저명한 경쟁법 학자 및 반독점 경제학자 중에서도 소득분배의 관심에 대응하기 위하여 형평성 고려를 더 강하게 법 집행에 통합할 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점차로 증가하고 있다. 

 

공정성은 크게 실체법적 차원과 절차법적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이는 실체적(substantive) 공정성의 문제와 절차적(procedural) 공정성의 문제이다. 

 

실체적 공정성 

 

실체적 공정성은 자원배분의 성과의 속성에 관한 것으로서, 본질적으로 소득분배의 문제이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불공정거래행위 심사지침’ . 1. 가.에서 공정성을 경쟁수단의 불공정성과 거래내용의 불공정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거래내용의 불공정성이란 거래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저해하거나 불이익을 강요함으로써 공정거래의 기반이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거래내용의 공정성을 위법성 판단기준의 하나로 삼고 있는 공정위의 태도는 실체적 공정성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실체적 공정성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수직적인(vertical) 실체적 공정성과 소비자들 간 또는 거래상대방들 간의 수평적인(horizontal) 실체적 공정성으로 구분될 수 있다. 수직적인 실체적 공정성은 수직적인 관계에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배분적 정의와 관련된 문제로서, 경쟁법상 소비자 후생 기준과 총 후생 기준의 선택에 관한 논쟁에 반영되어 있다. 수평적인 공정성은 수요 측면 내에서와 공급 측면 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수요 측면 내에서의 수평적인 공정성은 소비자 간의 차별적 취급과 관련되어 있다. 공급 측면 내에서의 수평적인 공정성은 후생 기준의 선택과 관계없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동등한 경쟁 기회를 얼마나 줄 것인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절차적 공정성 

 

절차적 공정성은 바람직한 성과를 산출하기 위한 방식으로서의 절차를 보호하는 것이다. 거래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은 열등한 지위에 있는 상대방의 자유의사 구속이라는 일방성 또는 거래상대방의 자유의사의 부당한 억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판례에서 문제된 사례를 보면,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방적 의사결정인 경우에 부당한 불이익이 인정되는 근거가 된다(대법원 2014. 2. 27. 선고 2012다67061 판결). 대로 동의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거래과정에서의 불공정성이 인정되지 않고, 이런 점은 거래내용에서의 불공정성 판단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1두9646 판결). 또한 동의가 있더라도 그 동의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그렇지 않고 납품업자가 거래관계의 지속을 위하여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지는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나 상관습 및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추단하게 된다(위 대법원 2001두9646 판결). 

 

경쟁법에서 중심이 되는 경쟁의 자유와 보다 더 잘 연결될 수 있는 것은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 즉 경쟁의 자유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되는 경쟁 과정에서의 평등(기회의 평등 또는 장점에 의한 경쟁)이다. 절차적 공정성의 초점은 경쟁 과정의 보호와 진입장벽의 제거에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공정성 개념의 변화 방향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지식정보혁명의 성격을 갖고 있는 3차 산업혁명이 한 단계 더 진화한 혁명으로 일컬어진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는 시대에서는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ICT)이 새로운 지능정보기술과 결합하면서 3차 산업혁명이 탄생시킨 온라인 또는 모바일 산업이 고도화될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산업의 근본적인 변화도 촉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 개념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토대는 플랫폼 시장 경제학에서 찾을 수 있다. 플랫폼 시장 경제학은 사업자 간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관심을 증대하여 규제의 구조적 형태의 효과에 대한 보다 나은 이해, 시장의 단면을 넘는 관점의 확대, 비대칭규제의 잠재적 비용에 대한 보다 명확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 관점에서는 보완적인 서비스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자(enabler)로서의 정보 플랫폼의 역할을 중시한다. 플랫폼 운영자는 보완적 서비스의 공급자에 대하여 개방적 접근을 허용할 유인이 있기 때문에 ICT 체계 내에서의 수직적 관계와 그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정성의 문제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예외적 상황은 플랫폼 서비스와 보완적인 관계에 있는 서비스가 플랫폼 운영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체재도 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플랫폼 운영자의 시장 또는 거래에서의 행위가 공정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공정 개념의 변화는 이를 판단하는 위법성 심사 기준의 분석 틀의 개선을 필요로 한다. 온라인 플랫폼 소유자의 사업 원천으로서 데이터가 더 중요한가 아니면 알고리듬이나 데이터 분석 기술이 더 중요한가에 대하여 논란이 있지만,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여부와 관계없이 데이터 수집·처리·이용에 따른 투명성과 책임성은 중요한 원칙이 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원칙하에 온라인 플랫폼 생태계 경쟁에서 플랫폼 소유자의 전략적 행위에 대하여, 그로 인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플랫폼 참여자와의 이익 균형을 위하여 경쟁당국이 공정성에 관한 발전된 기준을 갖고 감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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