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의 로엔 인수와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데자뷰(déjà vu)?

작성자 sisobus   |   2016-05-19 14:32:11
홍대식 (서강대학교 교수)


카카오의 로엔 인수

방송통신시장을 뒤흔든 SK텔레콤(‘SKT’)의 CJ헬로비전(‘CJHV’) 인수 소식이 던진 충격의 여운이 남아 있던 2016년 1월. 또 하나의 대규모 기업결합 소식이 언론의 지면을 장식했다. 카카오의 로엔엔터테인먼트(‘로엔’) 인수 소식이다. 인수 가액은 무려 1조 8,700억 원이다. SKT의 CJHV 인수 가액인 1조 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로엔은 온라인에서 MelOn이라는 브랜드로 음원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회사이다. 그에 반하여 CJHV는 국내 1위인 케이블TV 서비스 회사로서, 초고속인터넷서비스와 인터넷전화, 알뜰폰(MVNO) 서비스도 제공한다. 산업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소비자가 서비스의 필요성에 대하여 부여하는 경험치에 비추어 보면 두 회사의 가치가 왜 그렇게 차이가 있는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SKT의 CJHV 인수에 대하여는 연일 그 타당성에 대하여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카카오의 로엔 인수는 조용히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도 별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 로엔을 인수했을까? 필자는 사업자가 어떤 구상과 전략을 갖고 사업을 벌이고 또 다른 사업체를 인수하는지에 대하여 분석할 만한 전문성은 갖고 있지 않다. 경쟁법과 규제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카카오가 로엔을 인수함으로써 관련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그로 인한 법적인 시사점이 무엇일지 궁금해 할 뿐이다. 사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법적 잣대를 들이대려는 사람이 별로 달갑지 않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반드시 문제를 찾으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니 너무 걱정 마시길. 이미 우리나라 정부는 마음만 먹으면 사업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을 많이 갖고 있으니 그 수단이 적정하게 사용되도록 하려면 필자 같은 사람이 갖고 있는 전문성도 쓸모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로엔, SKT, 그리고 MelOn 서비스

카카오의 로엔 인수는 개인적으로 오래 전에 다루었던 사건을 떠올려준다. 로엔은 원래 서울음반이라는 음반제작회사였는데, 2005년 SKT에 인수된 후 MelOn 서비스를 개시하여 온라인 음악서비스 회사로 변신하였다. 그 후인 2008년에 로엔이라는 SK그룹 계열회사로 분리되었다가 2013년 스타인베스트홀딩스로 최대주주가 변경되었고, 다시 2016년 카카오로 최대주주가 변경되었다(이 회사의 연혁은 여기).

SKT가 로엔을 인수한 후 개시한 MelOn 서비스는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급기야 공정위의 조사와 제재를 받기에 이르렀다. MelOn 서비스가 개시되기 전의 국내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다. 이 시장은 2000년대 초반 PC에서 유선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하거나 P2P 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MP3 포맷의 음원콘텐츠를 내려받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몇몇 회사들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소리바다가 원조였고, 변천을 거쳐 지금도 유력한 회사로 남아 있는 회사로는 벅스뮤직이 있다. 당시 이들의 사업모델은 무료로 음악을 듣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MP3 파일을 내려받기하기 위하여 이용자가 웹사이트에 더 많이 더 자주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이들을 겨냥한 광고주를 모집하여 광고 수익을 얻는 방식이었다. 광고를 수익원으로 하는 전형적인 양면 플랫폼 사업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상품이 저작권의 대상인데, 저작권 이용관계를 명확히 하지 못한 점이다. 한국판 냅스터(Napster)라고 할 수 있는 소리바다의 역사가 저작권침해소송의 역사인 게 그 문제를 잘 보여준다(이 회사의 연혁은 여기).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과 MP3폰의 출현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의 극적인 변화는 단말기의 기술적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비자가 MP3 파일을 PC에서 유선인터넷으로 내려받기하여 MP3 플레이어로 듣는 시대에서 이동전화 단말기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04년 MP3 플레이어 기능을 내장한 이동전화 단말기인 MP3폰의 출현이 이를 가능하게 하였다. 첫 주자는 LG전자였다(아, 옛날이여!). LG전자는 MP3폰을 출시하면서 계열회사인 LG텔레콤에 이를 공급하였다가 음악저작권단체들과 음악산업 종사자들로부터 맹공을 당하는 역풍을 만났다. 유선 인터넷을 통한 MP3 파일의 범람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서 온 국민의 필수품인 이동전화 단말기를 통해 저작권 보호장치가 취약한 MP3 파일이 아무런 제한 없이 이용될 수 있게 될 상황에 이르자, 양쪽의 사업상의 이해관계가 정면충돌한 것이다(그 무렵 분쟁이 통신위원회 제소로까지 번지면서 법무법인에서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던 내게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지금의 저작권위원회)에서 저작권문화라는 잡지에 관련된 글을 하나 써달라는 요청이 있어 써준 적이 있다. 워낙 오래 전 글이라서 그런지 온라인에서 제공이 안 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래도 그때 쓴 글을 파일로나마 보관하고 있어 이 글에 참조가 되었다). 

공정위에서 크게 다루었던 SKT의 MelOn 서비스 사건은 이런 배경 하에서 탄생했다. SKT는 LG텔레콤과 달리 음악저작권단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사업모델을 택했다. MP3폰에서 음원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게 하되, 기술적 포맷으로 DRM이 걸린 MP3 파일만을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Digital Rights Management의 약자인 DRM은 디지털콘텐츠의 저작권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적용된 음원콘텐츠를 서비스하게 되면 저작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비스 현황을 관리하여 저작권자에게 라이선스 대가를 지급하는 시스템도 더 잘 구축할 수 있게 된다. SKT는 MelOn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자체 개발한 DRM을 서비스되는 음악 파일과 MP3폰에 적용하였다. SKT 이동통신 서비스의 가입자는 역시 SKT가 제공하는 MelOn 서비스에 가입한 후 PC에서 유선 인터넷으로 내려받기한 DRM 음악 파일을 MP3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초보적이지만 무선 인터넷을 통한 내려받기도 가능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애플(Apple)의 iTunes 서비스도 이런 방식을 택했다. 

이동통신 서비스 1위 사업자인 SKT의 사업 진출과 저항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에서 부동의 1위인 SKT가 온라인 음악서비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자 시장은 격동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 9월에 맥스MP3라는 이름으로 음악서비스를 제공하던 AD2000엔터테인먼트(신고 당시 MelOn 서비스 다음으로 시장점유율 2위였던 이 회사는 그 후 고전하다가 2006년 9월 CJ미디어에 인수되었다)가 SKT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제소하고, 다른 음악서비스 회사들도 얼마 후 그 뒤를 따랐다.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이용자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서 구매한 MP3 파일을 SKT의 MP3폰에서는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용자가 SKT의 DRM이 걸린 MP3 파일이 아닌 다른 MP3 파일(Non-DRM MP3 파일 포함)을 SKT의 MP3폰에서 이용하려면 MelOn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컨버팅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용자가 온라인 음악서비스를 멀티호밍하지 않을 바에야 시간이 갈수록 MelOn 서비스에 이용자를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느낀 기존 사업자들은 초간편 CD 굽기 서비스와 같은 대체수단을 제공하여 이용자가 느끼는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때마침 프랑스에서도 토종 음악서비스 사업자인 버진 메가(Virgin Mega)와 미국의 글로벌 사업자인 애플 간의 분쟁이 한창이어서 SKT와 경쟁사업자 간의 논쟁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에서는 심지어 DRM 호환성을 강제하는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까지 하여 애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프랑스 사건과 관련된 외국 전문가의 기사 번역본은 여기, 원문은 여기). 

필자는 사건 당시 SKT의 법률대리인으로서 이 사건에 관여하였다. 당사자나 다름없는 지위였던 만큼 이 사건을 보는 시각이 객관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 다만 이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이렇다. 이 사건에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모델이 경쟁과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문제가 되는 다른 많은 사건에서 논의될 수 있는 여러 쟁점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끼워팔기나 결합판매, 특허기술에 대한 접근거절과 같이 공정거래법 분야에서 눈여겨보는 행위 유형들이나 필수설비이론, 네트워크 효과와 쏠림 현상, 시장지배력전이이론, 정당화 사유로서의 기술적 혁신과 같이 판단의 기초가 되는 이론들이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SKT가 두 번의 심의를 거쳐(1차로 불공정거래행위인 끼워팔기 행위로 심의를 받고, 2차로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인 불이익강제행위와 소비자이익의 현저한 저해행위로 심의를 받았다)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와 과징금처분을 받고,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승소하였다. 그 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정거래법 분야의 법리적 현안에 대하여 대법원이 일정한 해답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011년 10월 대법원은 포스코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이 판결은 대법원 영문 홈페이지에서 검색어로 사건번호인 8626을 입력하면 영어로 된 전문을 찾을 수 있다)에서 제시한 원론적인 법리를 재확인한 후, 원심의 판단을 인용하면서 그 판단이 맞다 는 식의 판결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말았다(이 사건 대법원 판결을 보려면 법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판례속보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종합법률정보 서비스에서 검색해서 찾으면 된다). 당시 대법원이 쇄도하는 사건들로 몸살을 앓던 시기라 이른바 미제 사건 처리로 여념이 없던 때라는 걸 이해하더라도 공정거래법 연구자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이때 논의되었던 쟁점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데자뷰?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요즘의 상황과 비교하여 데자뷰를 느끼게 해준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단말기)로 이어지는 ICT 생태계에서 어느 한 계층의 1위 사업자가 그 계층에서 일어나는 신사업이나 다른 계층의 사업에 진출할 경우의 경쟁사업자의 저항, 경쟁사업자와는 다른 입장에 있는 거래상대방 사업자나 소비자의 엇갈린 이해의 문제는 그 문제가 제기되는 사업과 시장의 현황에 따라 모양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이 과정에서 수직적으로 통합된 사업자와 그렇지 못한 사업자, 규모가 큰 사업자와 중소 규모의 사업자, 서로 다른 계층에서 제휴관계에 있으면서 각자의 이해를 놓고 견제와 긴장을 놓지 않는 사업자들 사이에 변덕 많은 소비자를 잡기 위한 끊임없는 경쟁과 협력이 벌어지고 있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낳고 협력은 깨어지거나 배반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걸 그대로 수용할 수 없거나 용납하기 어려운 장면도 있다. 그 장면은 공정위나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미래창조과학부와 같은 관련 법률 집행 또는 정책당국이 개입 여부를 저울질하게 되는 장면이다. 또한 필자가 경쟁법학자로서 현미경과 확대경을 번갈아 쥐고 들여다보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사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야기와 우리 삶에 주는 시사점은 언제나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하지만, 왜 이런 상황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지 그 이유나 근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일반인에게 유용한 정보나 지식이 제공되지 않는 것 같다. 학자나 전문가들은 그들만의 리그가 있기는 하지만. 이 글로 문을 여는 ICT 법경제연구소의 블로그가 (많지는 않겠지만 의미 있는 숫자임이 틀림없는) 독자들에게 그런 갈증을 해소하는 통로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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