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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신문] 홍대식 교수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은 '검정고무신사태' 방지법이 아니다'

관리자 2024-11-13 조회수 23

[기고] 홍대식 교수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은 '검정고무신사태' 방지법이 아니다"


홍대식 교수(서강대 로스쿨)

2023.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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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인기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작가인 이우영 화백이 별세했다. 고인이 별세한 후 언론을 통해 고인이 제작사와 맺은 사업권 설정계약과 양도각서로 인해 사업화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제대로 배분받지 못하고 관련 민사소송에 휘말려 생전에 심적 고통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졌다. 고인 사후에서야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복지법에 따른 사건조사 후 제작사가 고인과 체결한 계약에 법이 금지한 불공정행위가 있음을 인정하고 수익배분 거부행위 중지를 명하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한 저작권위원회는 공동저작자가 될 수 없는 제작사가 고인과 함께 공동저작자로 등록한 사실 자체가 문제임을 자각하고 등록을 직권 말소하는 처분을 내렸다. 제작사가 고인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은 남아 있지만, 현행법상 행정적으로 가능한 조치는 신속하게 취해진 셈이다. 검정고무신 사건은 관계자들에게 구름빵 사건의 재연으로 여겨져 구름빵 보호법으로 불리던 저작권법 개정안 논의 활성화와 새로운 법안 발의도 이어졌다.

 
이처럼 검정고무신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이 논의되는 과정에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이 이러한 사태의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일이 생겼다. 이 법안에는 2020년 12월에 유정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과 2022년 11월 김승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2가지 버전이 있었다. 두 법안은 공통으로 문화산업 관련 개별 법령에 분산된 내용을 통합하여 불공정행위의 유형과 상생협력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그 제안이유로 하는데, 문체부는 콘텐츠 관련 국정과제인 장르별 공정환경 조성의 핵심 사항으로 이 법의 제정을 꼽고 있다. 이 법의 제정이 검정고무신 사건과 결부되면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 3월 29일 전체 회의를 열어 두 법안을 통합한 위원회 대안을 마련하고 대안에 대한 법제 심사와 관계부처 협의를 진행하는 등 법 제정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안의 핵심적인 내용이 문화상품사업자의 10가지 불공정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하여 문체부 장관의 시정조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보니 관계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미 유사한 금지행위 규제 권한을 갖는 공정거래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와의 규제관할권 중복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지난 7월 문체부 장관과 공정거래위원장이 법 제정에 협력하기로 하고 방통위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법 제정 작업은 8부 능선을 넘는 것처럼 보인다.

 

법안의 제목이 제시하는 것처럼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이 추구해야 할 정책 목적이 될 수 있고 이를 위한 법제 마련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 목적의 정당성이 법안에 담겨 있는 제도의 효과성과 비례성도 담보하지는 않는다. 정책 목적의 제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마련하는 제도가 이를 달성하기에 적합한지, 그 목적과 상충할 수 있는 다른 목적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지, 그 제도로 인한 혜택보다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대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제도 중에서 특히 금지행위 규정과 이에 대한 집행 규정은 정책 목적 달성에 도움은 별로 되지 않으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가장 먼저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구름빵 사건, 검정고무신 사건이 문화상품의 기획·제작 단계에서 발생한 문제인 반면에, 법안은 문화상품의 유통단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산업은 기획·제작 단계에서 아이디어와 기술이 중요성을 띠는 노동집약적 성격을 띠지만, 제작된 문화상품이 상업적인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이 따르는 특성을 갖는다. 그로 인해 저작재산권 계약에도 민법상 계약자유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는 저작권법의 체계에서 사업상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제작업자의 계약 관행에 따라 신인 작가나 무명 작가와의 계약에서 저작재산권을 전부 양도받거나 수익배분을 제한하는 행태가 나타났다. 법안에 규정된 금지행위 유형의 대부분은 유통업자와 제작업자 간의 유통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제작업자와 유통업자가 거래단계에서 구분되는 전통적인 문화산업의 가치사슬 구조에서는 이 문제를 통해 저작자가 구제되기 어렵다.

 

둘째, 문화산업 분야에서 문화상품의 디지털화와 유통의 온라인화에 따라 기획·제작 단계와 유통단계의 경계가 흐려지는 추세에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문화산업 유통업자와 제작업자 간의 불공정행위를 문화산업 특유의 별도 법률을 통해 규율할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웹툰·웹소설 산업 등 디지털화와 온라인화를 특성으로 하는 새로운 문화산업에서는 유통업자가 제작업자를 겸하여 저작자를 발굴하여 자금을 지원하고 다양한 상품 구성과 수익배분 모델을 개발하는 새로운 사업 형태가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작자와 제작업자 간의 계약 방식에도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웹툰·웹소설 플랫폼들이 직면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 글로벌 진출을 통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작자와의 상생협력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콘텐츠 제작 방식 도입에 힘입어 단기간에 국내 OTT 시장을 휩쓴 넷플릭스 사례, 대표가 미성년 웹툰 작가와의 저작권 분쟁으로 인해 시장 평판 위험에 빠져 경쟁력에 손상을 입은 레진코믹스 사례는 문화산업에서의 불공정행위에 문화산업 특유의 목적보다 시장 경쟁과 거래 질서 관점의 목적에 따른 기준에 따른 일반법을 적용하는 것이 타당함을 보여준다.

 
셋째, 만일 문화산업 특유의 별도 법률에 의한 금지행위 규율의 필요성이 조금이라도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대안에서 제시한 행위 규율 방식은 획일적인 법 적용을 조장하여 오히려 문화산업의 다양한 발전을 위축시킬 우려가 너무나 크다. 대안은 불공정행위 유형을 10가지로 열거하면서 이 중 판매촉진 소요 비용 등의 제작업자에 대한 부담 전가 행위 등 8가지 유형은 정당한 이유 없는 한 위법한 행위로,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행위 등 2가지 유형은 예외 없이 위법한 행위로 규정한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한 위법한 행위에 해당하면 사업자가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행위라는 사유를 정당한 이유로 내세울 수도 있겠지만, 이를 사후에 증명하는 일은 사실상 어렵고 위험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결국 유통업자는 향후 수익배분을 전제로 이용자 확보를 위해 임시로 무료로 상품을 제공하는 판매촉진 행사도 그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한 작가와는 진행하기 어렵게 된다.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행위의 경우 강제라는 표현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을 폭넓게 가리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작권의 다양한 종류나 범위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경우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하여 플랫폼 선택의 여지가 적은 신인 작가에 대한 사업자의 발굴과 투자 유인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넷째, 대안에서는 금지행위 규정을 위반한 사업자에 대하여 문체부 장관이 직접 사실조사를 하여 시정조치 등 제재를 하는 집행 방식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중복규제 내지는 규제 범위 확대의 문제를 유발한다. 공정위는 하도급법, 대규모유통업법, 공정거래법에 따른 금지행위에 해당하는 경우는 법안의 금지행위에서 제외하고 공정위가 조치를 우선할 권한을 갖는다는 점에서 공정위와 문체부 간의 업무 분담과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방통위의 문제 제기에 대한 국회의 대응도 법안에 방통위가 관장하는 법률과 관련된 유사한 규정을 두는 방향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법안에 규정된 금지행위 유형 중 판매촉진 소요 비용 등의 제작업자에 대한 부담 전가 행위의 경우 그 행위에 해당하는지와 관계없이 여전히 법안에 규정된 금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에 따른 금지행위보다 그 포섭 범위가 넓고 사업자 요건이나 위법성 판단기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유통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갖지 않고 대규모유통업법에 정한 비용 부담 비율로 사전 약정에 따라 진행하는 판매촉진행사도 법안에 규정된 금지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어 규제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이 저작자의 권리 보호에 이바지하는 방안은 이 법을 통해 유통업자가 제작업자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한 후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하면 그 수익을 충분히 배분해주고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 손실을 부담하는 거래 관행이 형성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제작업자가 저작자의 권리 보호를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제작업자의 수익이 보장되면 그 수익원이 되는 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의 시장 상황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고 문화산업을 구성하는 분야별로도 그 상황은 제각각이다.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구조상 절대다수가 영세업자인 제작업자의 수익이 보장된다고 하여 그 수익이 저작자에게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기대는 헛되다. 또한 제작업자의 수익이 보장되는 시장구조에서 제작을 겸업하면서 저작자를 지원하는 사업 형태와 같이 창의적인 사업모델로 경쟁하는 유통업자의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지만, 사실은 유통단계는 해외 플랫폼이 주름잡는 미디어산업의 현실이 다른 문화산업에도 전이되는 상황이 우려된다.

 
문체부가 문화산업 진흥부처로서 이우영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입법 개선 노력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법안에 금지행위 규정을 넣고 문체부가 집행 권한을 갖게 되면 규제의 혼선만 가중하고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를 수 있다. 더욱이 저작자와 제작업자 간의 문제인 이우영 상태를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문체부가 개별 법령에 분산된 내용을 통합하는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상생협력 지원 사업, 표준계약서 마련 등 진흥정책의 체계를 잘 구축하고 규제부처의 효과적인 규제에 협력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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