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정책의 진단과 전망: 피해구제를 중심으로
홍대식 교수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소비자정책은 시장경제에서 소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법과 제도를 통해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이 정책은 소비자의 권익을 증진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며, 소비자와 사업자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중점을 둔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한국의 소비자정책을 총괄․조정하는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정책을 거래 적정화, 안전성 보장, 정보 제공, 소비자 교육, 피해구제의 5개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이 중 피해구제와 관련된 소비자정책을 특히 소비자 분쟁조정 제도의 활성화라는 관점에서 그 현황을 살펴보고 간략한 진단과 전망을 해보려고 한다.
피해구제와 관련된 한국 소비자정책의 현황
공정거래위원회의 구분에 따른 소비자정책의 5개 영역 중 피해구제를 제외한 다른 영역이 사전 예방 정책 영역이라면, 피해구제는 사후 구제 정책 영역이다. 사후 구제는 소비자 문제, 특히 구체적인 소비자피해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이해관계 조정이 당사자 간에 자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쟁 상황을 전제로 한다. 거래 관련 분쟁은 원래 사법의 영역이므로 소비자분쟁도 사법의 피해구제 체계인 법원의 재판과 민사조정 절차에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행정부가 업무영역에서 발생하는 사인 간의 분쟁조정에 관여하는 행정형 분쟁조정 제도와 기구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고, 소비자 분쟁조정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2025년 공정거래위원회 주요 업무 추진계획에서 소비자 분쟁조정 관련 정책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피해구제를 위한 분쟁조정 및 소송지원 확대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는 사업자 대 사업자 간 분쟁에서 피해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에 초점이 있다. 소비자정책 과제로는 디지털 거래 소비자 권익 강화, 생애주기별 맞춤형 소비자 보호 대책, 법 집행 시스템의 실효성 제고 등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모두 규제행정 또는 지원행정에 속하는 정책이다.
피해구제와 관련된 한국 소비자정책의 진단과 전망
소비자 분쟁해결 제도와 기구 마련 그리고 그 운영이라는 소비자정책을 통한 피해구제는 사법의 피해구제 체계를 보완하는 것이나, 소비자 다수에게 분산된 소액 피해, 소비자거래의 정보와 협상력 비대칭에 따른 구조적 피해라는 소비자분쟁의 특성으로 인해 단순한 보완 이상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정책이다. 피해구제와 관련된 한국 소비자정책은 특정 방식에 의한 소비자거래(약관거래, 할부거래, 방문판매, 통신판매 등 특수거래) 영역에서 특별소비자법을 통해 청약철회권, 자유로운 계약해지권과 같이 사법보다 강화된 소비자 보호 제도를 두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와 같은 행정형 분쟁조정 제도와 기구를 통해 소비자에게 분쟁해결의 대안을 제공하는 제도적 틀 내에서, 소비자 문제가 빈번히 또는 새롭게 발생하는 특정 거래분야별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현재의 제도적 틀 안에서 맞춤형 피해구제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해온 공정거래위원회와 한국소비자원의 그간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정책의 바람직한 역할은 미시적인 현안 해결뿐 아니라 거시적인 개선 과제 발굴과 방안 마련에도 골고루 미쳐야 한다. 정책의 방향 전환은 정부가 맞춤형 피해구제 정책 경험을 쌓으면서 시사점을 얻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철학과 가치를 정립하고 그에 따른 정책 수단을 개발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소비자정책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의미하지만,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촉진하기 위한 것이다. 시장에서 소비자거래의 바람직한 규범과 피해구제 기준이 아직 정립되지 않고 자율적인 분쟁조정 기구가 발전 과정에 있다고 해서 정부가 소비자거래 분야마다 일일이 표준약관을 만들어 채택을 강제하고 행정형 분쟁조정 기구를 통해 모든 소비자분쟁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소비자단체의 피해구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소비자정책에 대한 필자의 바람은 소비자단체와 같은 민간의 역할을 동반자로서 존중하고 제도적으로 또 재정적으로 더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