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주창 기능에 바란다

작성자 관리자   |   2018-07-14 16:42:57

홍대식 교수 (서강대학교, 연구소장)* 

 

잊혀진(?) 공정위의 기능 

 

공정거래위원회는 흔히 공정거래법에서 부여한 권한에 근거하여 경쟁규제를 행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장 대 정부, 경쟁 대 규제를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볼 때, 공정거래법에서 부여한 권한의 행사는 시장에서의 사업자의 활동을 규율하는 좁은 의미의 규제적 성격보다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한 자기통제(self-control)의 기능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 기능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하는 구조나 행태를 시정하는 법 집행적 성격이 위주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쟁규제라는 표현은 형용모순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공정거래법의 집행을 포함하여 시장에서의 경쟁질서 보호와 관련된 공정위의 여러 가지 활동이 통상적인 규제와는 달라야 하고 법의 수범자인 사업자 입장에서도 그와 다른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법 집행을 포함한 공정위의 활동이 통상적인 규제와 달라야 한다는 점은 공정위가 수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기능인 경쟁주창(competition advocacy) 기능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경쟁주창이라 함은 법 집행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하여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말한다. 법 집행이 주로 그 수범자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위반시 구제수단을 강구하는 것인 데 반하여, 경쟁주창은 다른 정부기관과 일반 대중에게 경쟁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경쟁의 혜택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정위는 경쟁주창 기능으로 무엇을 하는가? 

 

공정위가 경쟁주창 기능을 수행하는 법적, 제도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정거래법 제3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독과점적 시장구조 개선시책 수립․시행의무 조항이다. 이 규정에 근거하여 공정위는 관계행정기관의 장에게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고 시장구조를 조사하여 공표할 수 있으며, 특히 시장구조의 조사․공표를 위하여 사업자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둘째는, 공정거래법 제63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경쟁제한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개정에 관하여 관계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는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이러한 공정위의 권한은 경제 관련 입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의 가치 충돌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행정규제기본법에 근거한 규제영향분석(Regulatory Impact Analysis)의 일환인 경쟁영향평가(competition impact assessment) 제도이다. 2009년부터 국무총리실의 지침에 따라 관계행정기관의 장이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령을 만들면서 입법예고를 할 때 공정위에 법안과 규제영향분석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공정위는 이에 대한 경쟁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해당 부처와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하게 되었다.  

 

위 세 가지 제도는 공통적으로 경쟁제한적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시장구조 개선시책과 관련된 공정위의 경쟁주창 활동이 공정위가 기존의 경쟁제한적 규제를 발굴하여 사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경쟁제한적 법령 제․개정에 관한 사전 협의 제도와 규제 신설․강화 법령에 대한 경쟁영향평가 제도와 관련된 공정위의 경쟁주창 활동은 경쟁제한적 규제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활동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사전 예방 활동과 관련하여 사전 협의는 관계행정기관의 장이 경쟁제한적 법령인지를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공정위와 협의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공정위의 심사 기능이 형식적이었던 반면에, 경쟁영향평가의 경우 규제의 신설 또는 강화에 해당하면 당연히 이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 경쟁제한적 법령에 대한 공정위의 심사 기능이 보다 실질적인 것이 되었다. 또한 공정위는 2010년 3월 ‘공정거래법 제63조에 의한 법령 등의 경쟁제한사항 심사지침’을 제정하여 경쟁제한사항을 경쟁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 사업자의 수 또는 사업영역의 제한, 사업자의 경쟁능력 제한, 사업자의 경쟁유인 저해, 소비자의 선택 및 정보 제한으로 나누고, 각 유형에 해당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은 공정위가 행하는 경쟁영향평가에도 원용될 수 있다.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을 위하여 공정위가 경쟁주창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권장할 일이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집행하여 위반사업자를 제재하는 것은 이를 통하여 사업자에게 경쟁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가 처한 제도적 여건이 경쟁제한적 적응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그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그 영향을 받는 사업자만을 제재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쟁제한적 규제 개선은 법 집행과 병행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경쟁제한적 규제의 개선이 반드시 규제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산업분야에 따라서는 유효경쟁의 기반을 형성하고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가 여전히 필요한 분야가 있고, 그런 분야에서는 규제의 합리화를 포함한 규제의 질적 개선이 더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공정위의 조사권한이 법위반 혐의를 전제로 한 구체적 위반행위 조사권한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공정위가 사업자를 조사하면서 어떤 법위반 혐의가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포괄적인 조사를 행한 후 조사 내용 중 위반행위를 걸러내는 방식의 조사 관행은 시정되어야 한다.  

 

도전과 과제 

 

공정위가 경쟁주창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때까지, 정부는 시장실패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범위의 규제적 개입을 허용하면서 경제 영역에서 성장지향적인 산업정책을 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행해온 경쟁주창은 정부가 성장지향적인 산업정책을 우위에 두고 시장실패 요인과 관계없이 폭넓은 규제적 개입을 하는 것이 용인되는 단계에서 정부가 경제활동을 위한 경쟁적 환경의 촉진이라는 관점에서 규제적 개입을 폐지 또는 감소시키거나 적어도 규제적 개입에 대한 정당성을 필요로 하는 단계로 이행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국 경제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국제적인 상호작용이 확대되면서 점차로 정부의 규제적 개입이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성과를 대신 제공하거나 시장의 형성을 촉진하는 순기능보다는 이미 형성된 시장이 경쟁적인 시장으로 발전하거나 그 기능을 자율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기능이 더 나타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정위의 경쟁주창은 시의 적절하게 행해진 것으로 평가될 만하다.  

 

그 성과는 일차적으로 정부의 규제적 개입이 산업정책적 필요에 의하여 행해져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시장실패 요인이 인정되기 어려운 산업 분야에서 잘 나타났다. 예컨대, 석유화학, 철강, 항공, 자동차 등 정부 주도로 산업이 육성되어 독과점구조가 고착화된 산업의 경우이다. 이러한 산업에서의 공정위의 경쟁주창의 성공은 주로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하였다. 첫째, 공정위는 그 구조나 운영 면에서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다른 경제부처들로부터 독립된 지위에서 규제입법 및 규칙제정 절차에 참여하는 법적·제도적 수단을 갖고 있었다. 둘째,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규제개혁 작업에서 공정위에 중요한 역할이 부여되었다. 또한 공정위는 금융, 에너지, 방송·통신 등 시장실패 요인으로 인하여 정당화될 수 있는 규제적 개입의 여지가 인정되는 산업의 경우 사적인 사업자의 행위가 행정지도와 같은 비공식적인 규제적 개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원칙적으로 경쟁법을 집행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는데, 이는 경쟁법 집행을 통하여 경쟁주창의 영역을 비공식적인 수단에 의한 규제적 개입에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개발도상국가 또는 신흥개발국가의 경우 시장과 경쟁 기능이 자생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단계에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시장 경쟁의 집행자보다는 그 형성자 또는 지원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시장 경쟁 그 자체를 촉진하기보다는 경쟁자에 대한 보호 또는 지원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산업정책 촉진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 나라에 시장경제체제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발전된 경쟁법과 그 집행기구로서의 경쟁당국이 도입되더라도 경쟁당국이 산업정책을 담당하는 다른 경제부처와의 관계 정립을 주도할 법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할 경우 경쟁주창과 경쟁법 집행 사이의 보완적인 상호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경쟁당국의 정부 내 독립성과 규제입법 절차에의 참여를 보장하는 법제도를 둔 우리나라의 사례는 경제발전 경험 모형을 필요로 하는 다른 국가에도 긍정적인 시사점을 줄 것이다.  

 

경쟁주창과 관련한 공정위의 경험이 다른 국가에 주는 실제적인 교훈은 경쟁당국과 정부 내의 다른 경제정책 담당 기관들과의 적절한 관계 설정에 관한 것이다. 공정위의 경쟁주창에 의하여 법에 명시된 규제적 개입의 근거를 개선하더라도 산업정책의 유산(legacy)은 남아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는 산업분야별 규제당국에서 규제에 의하여 형성된 독과점구조를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자신의 규제 영역 내에 있는 사업자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운영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또한 공정위의 경쟁주창으로 인하여 정부의 입법절차를 통하여 규제가 신설·강화되는 현상이 줄어들어 산업분야별 규제기관이 정부입법을 통하여 그 권한을 극대화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의 도입을 필요로 하는 산업분야별 규제기관은 공정위의 관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의원입법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공정위와의 사전 협의를 회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경쟁당국으로서의 공정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하여 정부 내의 다른 경제정책 담당 기관들이 아직 충분한 신뢰와 협력을 주지 않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이는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공정위 스스로 그가 수행하는 경쟁정책에서 지향해야 할 시장 경쟁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경쟁적 환경의 촉진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게 경쟁주창을 수행함으로써 다른 공적인 기관과 차별화할 필요가 더 절실히 요구된다. 

 

* 이 글은 필자가 발표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주창”(상사법연구 제31권 제4호, 2013)이라는 논문에 바탕을 두고 작성되었다. 이 논문의 영문판(”Competition Advocacy of the Korean Competition Authority")은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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